우린 아직,
2022. 3. 29. 15:41





이 모든 것은,


죽지 않기 위한 발버둥,
단말마가 되지 않기 위한 비명.

 

 

 

 

 




침잠해온 고요는 때론 아주 역겨운 것들을 부르곤 한다.

웅크린 몸은 스스로를 방어하는 것으로 제 역할을 하기 급급한데 주변에는 들릴 수 없는 소음들이 울렸다. 그것은 때론 부숴지는 소리를 냈고, 혹은 깨지는 소리, 또는 모든 것이 한데 어우러져서 찢기는 소리를 선명히 강조하기도 했다. 살갗이 짖겨지고 비명은 저택을 시끄럽게 울려든다. 죄없는 자들이 용서를 구하는 소리가 거북하다. 그러나 그 중 가장 역겨운 건 고통을 선사하는 주체이면서도 가장 비탄에 빠져 스스로를 연민하는 울부짖음이다. 날카롭게 깨져드는 예리한 비명은 파편이 되어 사방으로 비산했다. 

 


모든 게 그릇되었어.
마법을 가지지 못할 자들이 마법을 가지고
이 더러운 세상 속에 살아갈 네가 너무 가엾다.

이 세계를 돌리기 위해 노력했어.
우리는 그분이 아니라 이 세계를 되돌릴 수가 없어.
남은 건.... ....

 


듬성듬성 남은 기억의 편린에 불과한데도, 오랜 시간동안 들어온 탓인지 이다지도 뇌리에 생생하다. 언더힐 저택의 적막을 상기할 때마다 이는 종종 울려들곤 했다. 저는 저의 부모가 미쳤음을 알고 그들의 광증이 제게 또아리를 틀었음을 알아서, 언제나 이것을 경계했다. 아무리 분풀이를 한다고 한들 삭혀들 화가 아님을 알았고, 시간이 이를 덜어낸다 한들 화가 자리했던 빈 자리엔 공허만이 남아 스스로를 자멸의 길로 내몰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올곧게 빛나던 신념은 타인에 의해 허물어지고 무너져 갈피를 잃고, 흔들린 신념은 복수를 향하지만 이는 정당할지언정 이미 흔들려 모두의 손가락질을 받는 어설픔에 불과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멜리사 언더힐은 이를 경계했다. 제 부모와 같은 짐승이 되지 않기 위해서. 오랜 시간 괴로워하고 울부짖었지만 울분은 덜어지지 못했고 배신자들보다 더 추하게 바닥에 추락한 신념은 볼썽사나웠다. 어린 딸이 오랜 시간 지켜온 그들은 한낱 짐승에 불과해서, 저의 보호자가 어째서 그들이 짐승이 되었는지 알려주지 않았더라면 그들이 한 때 가지고 있었던 신념조차 알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니 저는 언제나 이를 경계했고, 그들의 수순을 밟고 싶어하지 않았다. 살아 숨쉬는 시간동안 감정에 휩쓸려 보내는 허송한 세월은 의미가 없다. 그것은 그저 기회를 박탈시킬 뿐이니 저는 어떠한 경우에라도 앞으로 나아가야만 했다. 


그러나 가장 경계했던 것이, 환청이, 울분이, 한평생 이해하지 못했던 부모의 고통이, 지금 제게 도래했다. 허송하다 비웃고 저급하게 내려본 짐승의 울분을 저는 이해했다. 무엇도 할 수가 없어 울부짖고 시간을 축이는 것만이 전부인 삶이 다시금 언더힐 저택에 도래해, 이번엔 제가 그 주인이라 말한다.

 

고여선 안되니 나아가야하는데 걸음을 내딛어야할 방향을 몰라 멈춰있는 것이 전부다. 속에서부터는 울분이 차오르고, 저의 모든 것을 내걸었으나 끝내 도달하지 못한 목표에 차오르는 무기력함이 목을 졸랐다. 무엇도 가지지 못한 채 잃은 이는 무력함에 목이 졸려듬에도 버둥거리지조차 못했다. 아니, 실은 남아있는 것이 있기 때문에 차오르는 울분이다.

 

 

제 숨이 끊어지도록 모두 걸었더라면 차라리 나았을텐데.

 


이룬 것 하나없이 목숨 하나만 알량하게 부지하여

제 숨의 용도를 다 해내지도 못한 채 생을 연명하고 있다.

 

그것이 저를 가장 미치게 만들었다.  

 

죽음보다 더한 공허가 저를 찾아온다. 스스로를 보호하고, 웅크려 묶어놓아도 오랜시간 이곳에 고이면 제 끝이 어떻게 될지는 이미 잘 알고 있다. 귀에 들리는 환청이 환청으로 끝나게 되지 않으리란 것을 직감했다. 스스로 만들어낸 감정에 침몰해 결국 무엇도 해내지 못한 채 미쳐 스러지는 것이 제 목숨의 마지막일테다.

이 저택은 저의 요람이었으나 동시에 제 부모의 무덤이었고, 이제는 저의 무덤이 되고자했다. 돌아온 저택은 의미를 새로 써내려가고자한 저의 각오와 달리 거대한 관이 되어 저를 옥죄었다. 이 길의 끝에 선 저는 무엇일까. 결과를 승복하지 못해 템페스트들을 죽이겠다며 지팡이를 들고 나선 미쳐버린 패잔병? 생각하니 터지는 것은 그저 날선 웃음이다. 그렇다면 차라리 전쟁의 승패를 깨닫는 순간 미쳐 날뛰어보기라도 할 것을. 그 자리에서 저열하게 지팡이를 휘두르고 죽었더라면 차라리 더 나았을테다. 뒤늦은 발악의 꼴은 제 부모와 다를 게 없었다.

웅크렸던 몸은 한껏 더 움츠러들고 제 손은 스스로의 머리카락을 거침없이 헤짐어 그를 움켜쥐었다. 


"아.... .... "


그런 꼴을 위해 나아간 앞으로가 아니다. 


"아아.... ..."


저는 목소리를 낸다. 이대로 죽지 않기 위해서, 


"아아아... ....!"


귀에 시끄럽게 드는 죽음에 먹히지 않기 위해.


"아아아아아악!"


이대로 미칠까보냐.

무기력하게 웅크렸던 몸은 튕기듯 일어나 제 주변의 망토를 챙겨들었다. 지팡이를 움켜쥐고 저는 무작정 저택을 나섰다. 모든 것을 잃었으나 아이러니하게도 목숨 하나만은 남아서 저는 무엇이라도 해야했다. 숨을 쉬는 그 모든 순간은 저에게 앞으로 나아가라 말했다. 바라는 바를 쟁취하라고, 멈추지말라고, 죽지 말라고, 미치지말라고, 살아가는 발자취가 타인의 눈에 짐승으로 남지 말라고.

나아가는 걸음에는 망설임이 없으나 방향이 명확한 것은 아니다. 방향을 잃은 걸음은 흔들리는 지팡이 끝과 다를 바가 없다. 그를 생각하면 방향을 잡아야한다 생각했다. 그 방향을 저는 모른다. 하지만 세상은 혼자 구하는 답으로 살아가는게 아닌 법이다.


세상엔 현명한 자들이 있고,
현명한 자들의 지혜를 활용해 군림하는 자들도 있는 법이다.
지혜가 오롯한 가치가 아니니 호그와트에는 네 개의 기숙사가 있었고
야망을 삼킨 뱀은 이 중 찾아가야할 이가 누군지 알았다.

저에게는 독수리가 필요했다.



에일라 캐번디시.

그 생각 하나로, 저는 무작정 저의 벗보다 저 진득한 이름을 가진 이를 찾았다.



 


그리고 문 너머로 보이는 것은 저의 저택과 다르지 않았다.


"있잖아, 언더힐. 잊은건 아니지?"


잡아챈 멱살, 저는 침잠하는 이를 끌어올려 그 낯과 얼굴을 마주했다. 불쾌하게 엉켜드는 알코올 향, 상대를 끌어올리면 그는 더 짙어져 그의 모든 말 하나하나에 술 기운이 훅 끼쳐들었다. 스스로를 가누지 못하는 몸은 늘어지고 그 와중에도 저와 지독하리만치 닮은 이는 입만 살아 저에게 묻는다.

그는 저와 닮았지만 동시에 가장 다른 사람이라고. 함께 지팡이를 들었을지언정 머글태생들이 마법 세계에 어울리길 바라는 별종이고 저는 그들을 온전히 내쫓길 바라는 사람이라고. 우리는 결국 함께 나아갈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님을 말했고,


"너와 내가 꿈꾸는 세상은 달라. 그런데 무슨 이야기를 듣고 싶기에 날 찾아왔어?"


그렇기에 찾아와 그에게서 답을 구하는 저의 우둔함을 꼬집었다.


"정말 변화를 추구하는게 맞아? 

순혈끼리 잘 먹고 잘 사던 

과거의 영광을 찾아 돌아가고 싶은 게 아니고?"


어지러움을 느끼는 것은 비단 이 방을 매우는 술기운만은 아닐테다. 언더힐 저택을 닮아 죽어드는 자를 위한 공간엔 공허가 물씬 베여 도망쳐 나온 걸음에도 발목을 재차 붙잡는다. 답을 찾기 위해 온 독수리는 벗보다 더 진득한 이름을 하여 뱀과 얽혔고, 그 이름답게 뱀과 터무니없을만치 닮은 꼴을 보이기도 했다. 결코 마주할 수 없고 함께 할 수 없는데 종종 그를 볼 때면 거울 앞에 선 기분이었다. 어쩌면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닮았고, 같으나, 그럼에도 결코 닿지 못하는 경계가 자리해있으니 거울이라 해도 틀린 말은 아닐테지.

 

독수리는 지혜롭고 그러니 무작정 그를 찾아온 뱀의 우둔함을 쉬이 꼬집는다. 뱀은 무어라 말을 할 수 없다. 왜냐면, 독수리는 이미 답을 아는 질문을 던진 것이므로. 뱀이 할 수 있는 말도 그가 한 말과 다를 것이 없다.

 

순수의 이념이 높아지길 바란다. 순수의 가치가 인정 받길 바란다. 마법사답게 원하는 바를 향해 나아가는 확고한 신념을 갖추는 이들을 보길 바란다. 순수는 오랜시간 지켜져왔고 그 가치를 가진 이들이 그 가치를 알았으면 했다. 순수가 마법을 부리를 수 있는 모든 재능의 잣대는 아니나 그저 마법을 잘 쓰는 것을 바란다면 마법사보다 마법을 뛰어나게 활용하는 생물들은 많다. 당장 집요정만 해도 그러한걸. 그러니 마법사는 마법 뿐 아니라 다른 가치로써 자신을 입증해야만 하고, 그 중 순혈은 모범이 되어야만 했다. 순수의 가치는 인정 받아야하고 순혈들도 스스로 그걸 알아야 하며 긍지를 더럽히지 않기 위해 자신의 가치를 갈고 닦아야함이 옳았다. 순수의 가치는 잊혀지고 순혈들은 긍지가 없으며 의무는 흐려져 누구도 그를 지지 않는다. 가장 마법사에 적합한 것이 순혈이어야하는데 저는 그에 부합하는 자들을 본 적이 없다. 배신의 죗값은 사라졌고 신뢰와 신념은 순수와 같이 가치를 잃으니, 진정 올바른 사회를 바로잡기 위해선 순수가 잡혀야하는 것이 옳았다. 그러니 순수의 이념이 사회의 가장 큰 가치이자 통념이 되어야 했다.

그 속에서 마법을 갖춰선 안될 자들이 훔쳐낸 마법도 뺏고 꺾어야함은 당연한 수순이다. 저와 눈앞의 이는 늘 이것으로 서로를 마주볼 수 밖에 없었다. 제 이상을 말한다한들 이해하는 이는 많지 않았으니 결국 입 밖에 내봤자, 그에게 있어선 순혈들끼리 잘 먹고 잘 산 과거의 영광을 되돌리는 것에 불과할테지. 저는 입이 있음에도 말을 꺼내들 수가 없었고,


"대답해봐, 언더힐... ...

이것만 확실히 하면 방법인지 뭔지 생각해볼테니까."


이 속에서, 상대는 재촉한다. 저는 무엇을 바라 왔냐고. 무슨 생각으로 왔냐고. 그러면 할 수 있는 대답은 무엇이던가. 멱을 잡아챈 손아귀에 힘은 풀어지지를 못하는데 제 입은 열리질 않는다. 입을 연 그 모든 순간부터 저는 그에게 예정된 말을 할 수 밖에 없으므로.

 

"그러는 당신은."

 

아니,


"당신은 왜 이러고 있나요, 캐번디시?"


질문에 답을 하면 그렇게 될 것이다.

 

간악한 뱀은 제가 바라는 바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그러므로 결론을 위해 나아가는 길은 비단 정면만이 있지 않음을 알고 있다.

뱀은 올곧게 나아가지 않고 휘어 독수리의 눈을 흐렸다.

 

"비록 이노센트가 패배했을지언정 템페스트의 이념은 머글태생들의 평등이었으니 

당신이 바란 바는 절반 이뤄진 것이나 다름 없잖아요."


나긋하게 속살거리는 제 목소리엔 일말의 분노도 얽히지 않아 스스로도 웃음이 났다.


"이노센트의 승리 이후 머글태생들의 인권을 부르짖는 것이 더  힘들었을테니 

어쩌면 이것이 당신의 이상을 위한 가장 쉽고 빠른 길이었을지도 몰라요.

 

그런데도 어째서 당신은 죽은 자처럼 고여있나요?

아, 복수를 위해 템페스트를 죽여버렸어야했는데 그러지 못해서?

당신의 이념보다 복수가 더 중요했던가요?"


저는 눈을 가리기 위해 독수리의 가장 큰 치부를 건드린다. 

 

"저는 죽지 않기 위해 왔어요, 캐번디시."


그럼에도 분노에만 잠식되는 상대는 곤란하다. 멱살을 잡아챈 손에 더 힘을 줘, 상대를 바짝 끌어당겼다. 오로지 상대의 술기운만이 번져들던 거리에서 제 숨도 섞여들 거리까지 좁히고 나면, 상대와 녹빛을 온전히 마주했다.

 

"결과에 승복하지 않는 건 저열한 짓인데

승복해 고여있으면 미쳐 제 부모꼴 날 것이 분명했거든요."

 

언더힐 저택에서 그렇게 미쳐버리건, 혹은 아즈카반에서 미쳐버리건.


"어느 쪽으로든 저의 죽음은 확실해보이니 이대로 죽지 않기 위해 나설 수 밖에. 

스스로 목숨을 끊는 멍청한 짓은 하고 싶지 않거든요. 

전 살아있고 기회를 쟁취할 가능성을 가지고 있으니까.

그런데 그 기회를 알아야해서 왔어요. 방향을 잡고 어떤 기회를 노려야하는지 알아야해서."

 

제가 도망쳐 나온 언더힐 저택은 저의 관이자 거대한 무덤, 제가 바꿔내고자 했으나 결국 바꾸지 못한 세상의 축소판. 도둑들에게 함락된 성. 태어난 순간부터 얽혀 살았는데 죽는 마지막까지 그곳에서 예정된 말로를 겪고 싶지 않다.

 

"저는 여전히 머글태생들을 죽여버리고 싶어요.

이 사회를 진정 올바른 가치로 되돌리고 싶다구요.

오랜 역사로 이뤄낸 사회는 템페스트란 폭도들에게 함부로 빼앗겨선 안될 가치니까."

 

여전히 상대와 저는 마주보는 거울이고 결코 닿을 수 없는 경계선 너머의 사람이며, 끝내 서로에게 겨누는 지팡이조차도 같겠지만, 

 

"그 방법을 찾고 있는데, 뱀은 야망을 품을 수 있을지언정 독수리에 비할 지혜는 아니니 그를 빌리고자 왔답니다."

 

등을 맞댔을 때에는 제 적에게 지팡이를 겨누는 든든한 편이 될 수가 있다.

 

"당신도 이 상황이 돌아가는 작태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생각하세요. 

일어나요. 그리고 나를 도와요. 

이대로 고여봤자 남는 것은 미쳐 날뛰는 짐승꼴 밖에 되지 않아요.

 

그게 당신이 되었건,

혹은 저 밖의 템페스트가 되었건."

 


뱀은 마지막까지 속살거렸다.

가장 저의 본질을 닮은 색상을 마주하면서.

저의 색을 가진 자에게 야망을 얽어.

 

 

"캐번디시,
우린 아직 서로에게 등을 맡길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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