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2022. 2. 22. 03:07
2022. 2. 22. 03:07
말문이 막힌 양 잠시 다물리는 입이 보인다.
"아직 가지고 있어?
그럼 언젠가는, 그 편지가 수신인에게 도착하는 날이 올까.
조금은 기대해도 되려나.
항상 그렇지만 나는 네가 그렇게 말 해줄 때마다 바보같이 굴지 않는 법을 잊어버리게 되는 것 같아.
나도, 지금 취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거든.
1학년이 아닌데도 말이야."
이어 꺼내지는 말은 엉성한 웃음과 함께 했다. 편한 시선, 상냥한 말, 엉성한 웃음. 처음 만났을 적과는 확연히 다른데 지난 날과 다를 것 없는 셋이 제 시선에 박혀든다. 제가 한 말의 무엇이 그를 바보같이 만들었는지 알 수가 없으나 적어도 서로가 함께 보냈던 1학년을 즐겁게 여기고 있음은 분명해 보였다. 그러니 바보같다는 말과 더불어 엉성해진 웃음을 보고서도 비웃음은 나오지 않는다. 비웃을 수가 없다. 그는 무엇보다 저에게 와닿는 말이 되었으므로.
"당신의 것이니 언젠가는 당신에게 갈 편지랍니다.
그리고 저는 당신이 바보같이 구는 걸 꽤 좋아하는 편이에요.
저는 칭찬이 아니더라도 와닿는 진심을 좋아하고,
포장되지 못한만큼 그 속이 진실하다고 생각하는 편이거든요."
포장하는 법을 배웠으면서 퍽 아이러니한 소리를 했다. 하지만 오히려 그를 알고 있기 때문에 달가워하게 된다. 상대도 저와 비슷한 교육을 들었으니 낯을 가리고 우아하게 말하는 법을 잘 알텐데도, 그러지 못하는 것을 보면 무엇보다 진심을 확신하게 되어서.
"그러니 아이러니하네요. 그 기억에 취하는 건 저라고 생각했거든요.
제가 받은 것들이 더 많으니까요.
방학 전의 당신이 한 약속을 포함해서도 말이죠."
지난 날을 회상할 때 유쾌한 기분에 젖어드는 건 저뿐만이 아니라는 것이 놀랍다. 되짚어보면 늘 저는 받고 있었는데. 사소한 호의부터 배려, 약속까지.
"저는 그래서 문열기 주문이 싫어요."
별다른 악의도 없는 질문에 저 혼자 볼썽사나운 꼴을 보여줬는데,
“내가 잘못한 거야. 멜리사."
잘못한 일이 없는 이가 잘못을 입에 담았고,
“네 앞에서는 절대로 문열기 주문을 쓰지 않을게.”
가장 듣고 싶은 말을 약속해준다.
어린 날에 보여준 볼썽사나운 모습은 여전히 낯부끄러운데, 그럼에도 아무것도 모른 채 해주던 그 약속이 좋아 회상이 어렵지 않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잘못했다, 하는 말과 함께 제 앞에서 문 여는 마법을 쓰지 않겠다 외쳐주는 이가 생각나고 오랜 시간 이에 대해 묻지 않아준 배려에 대해 새삼 실감했다.
"벤."
여전한 이를, 어린 날과는 다른 호칭으로 불러
"제가 언젠가 그를 싫어한 이유를 설명해주겠다고 했죠."
하나씩, 너무 오랜 시간동안 미뤄왔던 약속들을 지키기로 했다.
"그 주문이 싫은 이유를 말하기 전에 묻고 싶은게 있어요."
다만 그 전에 듣고 싶은 것이 있다.
"당신은 어째서 그런 약속을 했나요?
아무것도 모른 채로 한 터무니없는 약속은,
당신의 말에 갑자기 얼굴이 엉망이 되는 이를 달래주기 위함이었나요?"
상대가 오랫동안 묻은 것만큼, 저 역시 오랫동안 묻어온 질문을 던졌다. 아무것도 잘못하지 않은 이가 담은 잘못과, 이어 고마우면서도 제 억지에 맞춰준 터무니없는 약속에 스스로도 어이없어 웃으면서,
"그리고 여전히 그 약속을 지킬 생각이 있나요?"
(*로그가 아니라 말이! 너무! 길어서! 이렇게 드립니다.....멘답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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