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분하세요.
2022. 2. 14. 10:26

 

 

 

 

 

벤자민 스탠리는 좋아할 수 없는 것들로만 이뤄진 사람이다. 

 

멜리사 언더힐이 본 벤자민 스탠리는 그러하다. 순혈의 핏줄이면서도 한두푼으로 해결해주는 의뢰도 볼썽사나워 보기 싫고, 제 독설에 결코 지는 성정이 아님 역시 제 속을 뒤집어놓는다. 벤자민 스탠리 자체도 멜리사 언더힐이 좋아하기 힘든 사람이지만, 진정으로 그를 좋아할 수 없는 건 그를 이루고 있는 혈통이었다.

 

벤자민 스탠리는 배신자의 자식이다.

 

그는 순혈의 긍지와 마왕을 배신한 이들의 자식이다. 신의도, 신념도 모르는 배신자들의 핏줄은 고스란히 이어져 저와 나란히 서는데, 그것을 문득문득 상기할 때마다 소름이 끼치고 화가 났다. 제 부모는 마지막까지 지키고 간 것이 무엇인지도 모를 이가 같은 세상 아래서 산다는 것이 이다지도 소름끼칠 수가 없다. 행복이 삼켜지는 아즈카반을 이미 일찍부터 느끼고 있던 부모가 스스로 감옥으로 걸어들어가는데, 그 절망과 좌절을 선사한 이들은 정작 웃고 지내는 것이다.

 

멜리사 언더힐은 이해할 수가 없다. 어떻게 스스로 한 말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으며 행해온 모든 길에 신념과 긍지가 없는지. 순혈의 고결함은 마법의 역사와 함께 했다는 것에 그 가치를 두기도 하지만 끝까지 지켜냈기 때문에 고귀하고 가치있는 것이다. 그런 순혈의 핏줄을 이어놓고서 쉬이 말을 바꾸고 저 좋을대로, 저 편할 때에만 입에 담는 순혈의 사상이란 얼마나 우스운가. 진정으로 신념을 지켰던 자들은 스러졌고 배신자들은 아무렇지 않게 고개를 들고 살아간다. 그 꼴을 볼 때마다 치미는 구역질에 멜리사 언더힐은 매번 깨닫고 만다.

 

그래서 제 부모가 습격사건을 벌였고,

그렇기에 벤자민 스탠리가 습격사건의 피해자라고.

이건 당연한 복수였다.

 

 

"네 부모가 이쪽을 건든 이유를 몰랐냐고?
아니지, 오히려 너보다 내가 더 잘 알고 있는거지."

 

유쾌한 웃음이 번져든다. 어둠의 마왕을 배신한 자들을 위해 기꺼이 지팡이를 든 제 부모, 그리고 그 부모가 난도질 쳐내기 위해 지팡이를 겨눴었던 상대는 잘 알고 있다 말한다. 그저 세상에 미치광이 범죄자라고 떠들석한 부모를 그 피해자가 감히 알고 있다 말한다. 

 

진정으로 알고 있으리라 생각하지 않으면서도 그 유쾌한 웃음 뒤로 나올 말을 기대한다. 어쩌면 직접 그 지팡이를 맞이했으니 어쩌면 거기에 실린 것이 무엇인지 알지도 모르지. 아니면, 배신의 핏줄이기에 배신의 값어치를 더 잘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제가 제 부모의 신념과 긍지를 알고 있듯. 그렇게 말을 기다리면,

 

 

"그 당시 어둠의 마왕한테 붙었다가 그런 적 없던 척,

손 털고 잘먹고 잘사는 순수혈통이 몇이나 되는지 알아?

네가 평소에 순혈이라 존중해요, 하고 다니는 가문 중에서도 그런 가문이 꽤 될텐데.

아, 그건 또 네 인지 범위 바깥인가?"

 

 

상대의 목소리가 바뀐다. 저를 따라하듯 나긋하게, 우아하게. 저급하게 돈 몇 푼에 이리저리 움직이는 주제에 따라하는 순혈의 모습에 되려 이쪽의 낯이 깨어진다. 빼앗기기라도 한 것마냥 여유로움을 가장하기가 어렵다. 마지노선의 타협처럼 정해둔 제 선을 건드리니 가장 여린 살을 찔린 사람마냥 날카롭게 짜증이 낯을 찢고 튀어나오는 것이다.

 

 

"너네 부모님은 그냥, 세상을 바꿀 능력도 없으면서 그거 인정하기 싫어서,

그런 주제 또 겁은 많아서 그나마 만만한 사람 골라서 화풀이한 거라니까?"

 

 

그럼에도 결국 여유를 되찾게 해주는 건 상대다. 시답잖게 따라하는 우아함으로 내뱉은 헛소리에, 결국 저도 웃고 말았다.

 

"봐요, 이해를 못했잖아요, 스탠리."

 

이번에 상대를 흉내내는 것은 저다.

 

"제 부모가 당신들을 배신자라 칭하고 처벌하고자한 건,

당신들이 반란의 씨앗의 시초자였기 때문이예요."

 

죽지 못해 살던 제 부모가 그저 화풀이를 했을 뿐이라고. 그저 만만한 사람 골라 습격했을 뿐이라고. 제 부모는 긴 시간을 괴로워했고 그 시간의 종지부를 찍기 위해 지팡이를 들었다. 실상, 모든 걸 다 포기했다는 거다. 그 와중에 급급하게 챙길 목숨이 어디있단 말인가.

 

제 딸조차 가여이 여기면서도 복수를 위해 뒤돌던 게 부모다.

 

제 부모는 반란을 일으킨 자들을 용서하지 못했다. 그러니 온종일 울부짖고 흐느껴 탈진해 늘어지다가도 제 분노가 모든 걸 넘어서면 주변의 어떤 것이던 집어들고 집요정들에게 분풀이를 했다. 그들은 긴 시간 그렇게 미쳤고, 미쳐있었고, 그리고 마침내 지팡이를 들어 복수를 행하고자 했다. 그것이 허무라 할지라도, 그들의 주인의 작은 안식을 위해. 

 

그들은 배신자들을 죽이고자 했다. 그리고 배신자들은.

 

"반란에 불을 지핀 건 당신들이지. 실상 반란을 일으킨 것도 당신 핏줄이나 다름없어.

직접 마왕을 죽이지 않았나요? 하지만 그건 마왕을 죽일 깜냥이 되지 않아서잖아.

마왕의 자비없는 처벌을 두려워한 개들이 그의 목을 물어뜯었지만 개들을 충동질한 건 당신들이야."

 

배신자들은 떠나가고 어둠의 마왕은 분노했다! 끔찍한 과거를 회상하는 부모가 울부짖으며 냈던 말이다. 그러니까, 배신자들은 어둠의 마왕을 물어뜯은 자들만 있는 것이 아니다.

 

"당신들부터가 배신지였던거야.

그래서 내 부모는 당신들의 숨통을 끊어놓으려했어.

 

세상을 바꿀 능력도 없으면서 인정하기 싫었다고?

웃기지말아요, 그 분들은 오로지 마왕만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했어.

그렇기에 선구자가 아니라 복수자로써 아즈카반에 들어간거야."

 

습격사건이 발생한 것이 벌써 몇해나 지났는데 피해자조차 그 사건의 진정한 의의를 모른다. 그것이 우습고 슬프다. 화가 난다. 신념과 긍지를 모르는 이들이 판을 치니 제 부모가 죄인이 되고 처벌을 받은 자들조차 저들이 왜 처벌받았는지를 모른다. 잊혀지는 것보다 이유를 오해하고 가치가 무뎌지니 그에 서글퍼진다. 북받치는 설움이 미간을 일그러트려,

 

"이건 화풀이가 아니예요, 스탠리. 멍청하기는.

당신이 죽을 뻔한 것은 그 더러운 핏줄을 이었기 때문이고,

그 더러운 핏줄은 고결한 혈통의 가치를 스스로 바닥에 처박았어.

 

그런 주제에 순혈주의를 운운하다니 우습기도 하지."

 

세상에 나홀로 동떨어진 기분은 익숙하다. 세상은 그릇되고 저는 이 안에서 가장 툭 튀어나온 모난 돌이다. 저는 언더힐이고, 제 부모의 자식이며, 그들의 증오와 신념을 유산으로 이어받았으니 저 또한 그리 돌멩이로 살아갈테다.

 

그들이 안온한 세상에 불현듯 던진 1984년의 돌멩이처럼.

 

"그리고 제가 존중하는 순혈들은 몰락 이후의 잔당이지, 최소한 먼저 등돌린 사람들은 아니랍니다.

배신자라 그런가 그 차이를 구분을 못하는군요?"

 

 

 

스스로의 주제를 알아야지. 감히 그들과 저를 동등선상에 보는 쥐새끼를 비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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