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싫어요.
2022. 2. 12. 18:18
2022. 2. 12. 18:18
등을 돌린 이의 우아한 지팡이 곡선까지도.
학교에는 기괴한 상자가 하나 있다.
처음엔 사람들이 잃어버린 물건들을 줍는 상자라고 생각했다. 상자에 코인을 넣으면 물건을 주는데, 정작 나오는 물건들 중 크게 값진 것은 없었다. 때때로 코인을 받았으면서도 물건을 주지 않는 경우도 있고 나오는 물건들 중 사용감이 넘치는 것들도 종종 있었다. 그러니 저는 그것이 잃어버린 물건들을 주운 마법 상자가 코인을 받으며 하나 둘 내주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 안에서 1984년 신문이 나오기 전까지는.
그저 오래되었을 뿐인 신문이 뭐가 특별하겠냐만은, 적어도 제게 있어서는 조금은 특별한 신문이다. 그 해의 특정한 날에, 한 해의 수많은 기념일 들 중에서 가장 근래에 생긴 기념일의 날에 생긴 일이 특별하다. 잊을 수가 없는 날이다. 그 날은 제게 있어 가진 의미가 많았다.
그 날은 어둠의 마왕이 몰락하는 것을 기념하는 날이었다.
그의 열렬한 추종자가 배신자들을 습격하던 날이기도 했고,
제가 부모와 마지막으로 본 날이기도 했다.
이제와 새삼스러운 날은 아니다. 그 날은 제 부모가 범죄자라 완전히 낙인찍힌 날이었고, 그를 빌미로 저에게 쏟아지던 주변의 멸시와 비난들은 일상이었으니 매순간 자각하고 살았다해도 과장은 아닐테다. 비단 그것이 아니라 한들 제 보호자는 늘 저에게 말을 했다.
네 부모를 부끄러워 여기지 마라.
누구보다 고결하게 순수의 이념을 좇아 스러진 이들이고,
가치를 잃는 시대에 순혈의 긍지를 되새겨 알린 투쟁자고
끔찍한 세상의 필요한 희생자였다.
시대가 진정 이렇게 모순되고 그릇되었기에 그들이 죄인이 된 것이지
그 신념과 희생을 보면 누구보다도 숭고하고 올바르게 산 게 네 부모다.
너는 그 고결한 이념을 받은 핏줄이야.
그러니 제 부모의 죄가 어떠한들 저는 주눅 들지 않는다. 멸시와 비난에는 웃는 낯과 나긋한 어투로 되갚았고, 존경하는 부모의 뜻을 잇고 긍지를 아는 순혈답게 저열한 자들에겐 증오와 비난을 퍼부었다. 그릇된 세계는 좋아할 구석 하나없이 모두 싫은 것 뿐이라 이 세계가 진정으로 올바르게 변하기를 바랐고, 그를 스스로 생각하게 되면 부모에 대한 존경이 무럭하게 자라났다. 저는 부모를 존경했다. 그러니,
"근데 충성심이나 복수 이전에 너는 없는거야?"
그러니.
"둘 다 아즈카반에 가면 넌 혼자 남잖아."
그러니.
"고모님이 너를 돌봐주신 것 같긴 한데, 널 돌봐야 하는 건 부모님이잖아."
그러니.
이 말에 말문이 막히는 이유는 저도 알 수가 없다.
"세상에 도둑들이 판을 쳐, 가여운 나의 딸.
이 더러운 세상 속에 살아갈 네가 우린 너무 가엾다."
부모님은 저를 이 시대에 살아갈 저를 가여워했다고, 그렇기에 어둠의 마왕이 몰락했음에 더 좌절하셨을거라, 그 분들은 저 역시 위한 것이라 말을 해야하는데
"사랑스런 우리의 딸. 우리는 이 세계를 되돌리기 위해 노력했어.
하지만 우리는 그분이 아니라 이 세계를 되돌릴 수가 없어.
이제 남은 건 그분의 작은 안식을 위한 복수뿐이야.”
저는 거짓을 말할 수가 없고,
"가여운 아가씨. 울지마세요. 저희가 지켜드릴게요."
엉엉 우는 저를 달래고 보살피던 것은 절망을 토해내는 부모 대신 피투성이의 집요정들임을 기억한다.
제 부모는 신념을 따른 이들이니 어쩔 수 없는 일이라, 때로는 혈육보다 더 중요하고 지켜야할 것이 있는 법이라 말을 하면 그만이다. 세상에는 어린 자식보다 더 중요한 가치가 있다고, 어쩌면 순혈의 혈통 하나보다 순혈의 긍지가 더 귀한 법일 수 있다고 말해야했다. 그러니 저는 그들을 이해한다고. 그러면 되는데,
"싫어요! 싫어! 가지마!"
이해하지 못한 순간을 명백히 기억하므로 이 또한 거짓이다. 저는 어떤 말도 할 수가 없다.
어린아이의 비명소리가 귓가에 웅웅거린다. 가까이서 외치기라도 하듯이, 혹은 혹은 제가 말하기라도 하듯이. 뒤이어, 쾅! 누구도 잡지 않은 문이 닫힌다. 처음으로 사용한 마법은 거친 소리를 내며 문을 꽁꽁 닫아버린다. 스스로 한 일에 대한 기쁨을 느낄 수가 없다. 태어난 순간부터 저에게 마법은 너무도 익숙한 것이고 당연한 수순이었으니까. 저를 보호하던 것은 집요정이고 그들은 마법을 잘 쓰는 생물이었으므로 지팡이없이도 사용된 마법에 놀라는 어린아이는 없다.
아니면,
그조차도 신경쓰지 못할만큼 절박했던가.
아이는 등을 보고 싶지 않았고, 그래서 문을 막았는데,
그럼에도 습격사건은 기어이 벌어졌다.
"모렐."
달싹이며 목소리가 나온다. 보이는 두 개의 등에 비명을 내지르고 제 성질껏 악을 쓰고 싶은데 그럴 수가 없다. 그때에도 그러했고 지금도 그러하다. 과거의 편린을 보면서도 악을 쓰지 못하는 저는, 평생토록 환영을 보면서도 그냥 순순히 보내줄테지. 결국 무엇도 막지 못하리라는 걸, 아니, 저는 막지 못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으므로.
"저는,"
발음이 평소와 달리 뭉개진다 생각들면서도 이를 멈출 수가 없다. 나오는 제 목소리가 이질적이다. 갈무리 하려고 해도 제대로 인식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하나하나 뚝뚝 끊기는 제 목소리는 나긋했나? 표정은? 제가 진정 낯을 제대로 갈무리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무엇하나 제대로 포장도 하지 못한 채 꺼내들어버린 진심이,
"문열기 주문이 싫어요."
얼마나 볼썽사나울까. 그 사실이 무서워서, 그대로 뒤돌아버렸다. 이해도 못할 상대를 두고서 자리서 도망쳤다.
(*늦은 답 죄송합니다. 오타와 비문은 마음의 눈으로... 편하게 스루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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