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어떤가요?
2022. 2. 12. 16:49
2022. 2. 12. 16:49
잿빛의 하늘에서 내리는 눈발이 시렵다.
결정을 알아볼 수 있을만큼 눈송이의 굵기가 굵다. 어느새 소복하게 쌓여들어 눈잔디가 만들어지고 내딛는 걸음마다 흔적이 선명히 남는다. 그아래에 깔린 것은 마른 풀, 짙은 빛의 흙인데도 눌린 발자국 아래에 보이는 것도 여전히 눈이라, 세상은 형태만 남긴 채 하얀 빛에 삼켜져버린다.
눈이 싫다. 세상을 지워낼 듯 굴면서도 결국 덮는 것에 불과한 형태가 어설프다. 다양한 색채로 어울어져 아름다운 세계가 존재하는데 그를 단조로운 색으로 가려버린다. 좋아하기 힘든 세상은 오늘도 싫은 것들로만 가득찬다. 날선 기분은 누그러들 줄을 모르고, 세상의 흔적을 삼켜내는 아귀들에게 저 또한 먹히고 싶지 않아 부러 그 위로 걸음을 내딛었다. 발끝에 힘을 줘 내딛는 걸음으로 발자국을 남긴다.
소란하게 뛰노는 이들의 웃음소리, 내던지는 눈뭉치와 높게 내지르는 비명. 각자의 방법으로 존재의 흔적을 남기려는 이들이 가득하다. 저 치들은 지워져도 좋으련만. 망아지 같은 꼴을 한 이들 중 존중해야할 이가 없음을 확인하면, 이어 몰려드는 것은 아쉬움이고 이는 안타까움이 되며 짜증으로 번져들다 짙은 불쾌함으로 남아버린다. 그를 외면이라도 하련 양 시선을 돌리니, 이번에 시야에 들어오는 것은 다른 이다.
푸른빛이 옅게 돌지만 결국은 은발이라, 하얀 세상의 일면이 된 것만 같은 이가 있다. 눈에 두드러지지도 못한 존재감인데 그러면서 몸은 또 웅크려 바닥과 가까이 하니 금방 눈발에 먹혀버릴 것만 같다. 애초에 먹힐 듯이 살아가는 이이기도 했다. 연회장에 도둑마냥 살금살금 와 먹을 것을 한 두개씩 가지고 가고, 더듬거리는 목소리는 자신감과 거리가 멀며 행동은 부산하다. 제대로 갖춰입지 못한 복장은 고결한 혈통으로 보이질 않고 고결도, 위엄도 없으니 순혈의 긍지가 바닥을 나뒹구는 이 세상엔 더할 나위없을 먹이감이다.
그래도 살아가는 생명으로써의 본능일까, 눈 위로 남기는 손도장이 있다. 손이 얼어버릴테니 실상 별로 찍어내지도 못할 걸 흔적이라 만드는 걸 보면, 어쩜 이다지도 흔적조차 어리고 나약한지 모르겠다.
그것도 불쾌했다. 저 혈통들은 분명 뻔뻔하고 비열하며 사리사욕을 채울 줄 알던 자들인데 남은 혈통은 쭉정이다. 순혈답지 못한 행태에 짜증이 났다. 그러니 작은 심술을 부린다. 그대로 성큼성큼 다가가 손도장을 콱, 밟았다.
"웅크리고 눈 위에서 무얼 하나요, 스웰링?"
대화는 제 입이 열어지고 나서야 이어진다.
저는 제가 말을 거는 이 상대를 알고 있다. 어둠의 마왕 몰락 이후 그와 같이 몰락해버린 집안의 핏줄이다. 스웰링 가는 예언을 사칭했고 예언을 이루기 위해 더러운 뒷수작을 벌였으며, 마지막은 어둠의 마왕이 승리할 것이라 말해 그들의 예언이 완벽한 거짓임을 스스로 증명하고 말았다. 집안 대다수가 처벌받고 감옥에 수감 중이니 끊긴 핏줄이라 봐도 무방하고, 쌓인 금은 모조리 몰수당했다 들었으니 진정으로 남은 것은 순혈이란 사실 하나 뿐이다. 그리고 남은 이의 삶이 어떨지는 불보듯 뻔한 이야기.
"대수롭지 않은 걸 대수로운 걸로 보이게하는 재능이 있군요."
"고결한 이가 한껏 움츠리니 도둑처럼 보이지 않겠어요?
거짓말보단 나아보이지만 말이죠."
이어지는 심술이 있다. 그리고 심술에 이어지는 말은 이것이다.
"화난거야?
내가... ... 어쩔 수 없는건데.
너도 그렇잖아."
저의 심술에 화났냐 물었던 이는 조각조각 말을 나누어 스스로의 결백을 주장한다. 살아가며 당한 괴롭힘이 퍽 억울하기라도 한 걸까, 더듬으면서도 하는 말들은 억울함을 말한다. 너도 그렇지 않냐며 꺼내는 이야기는 분명 저로써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이다.
쉬이 설명하면 그것이다. 사기꾼들은 감옥에 수감되었고 그들에게 던져야할 돌은 철장에 막혀 떨어진다. 그렇다면 갈피 잃은 돌은 어디에 던져야할까. 쉬이 내려놓지도 못한 채 주변을 둘러보면 죄악의 핏줄을 발견하게 될 테다. 눈앞의 이는 제물이다. 제물로 살아온 이다. 저는 누구보다도 이를 잘 이해한다.
"우리가 하지 않은 일은, 어쩔 수 없는데."
"넌, 멜리사 언더힐이잖아."
왜냐면 저는 멜리사 언더힐이고,
이 시대에 죄악의 핏줄은 하나만이 아니므로.
범죄자의 자식은 또다른 범법자의 자식의 처지를 이해할 수 있다.
저의 부모는 어둠의 마왕에게 충성한 추종자다. 그의 몰락에도 충성은 변하지 못한 채 제 모든 걸 내던져 마왕을 위한 목소리를 내고 범죄자로 낙인찍혔다. 죄악을 저지른 것은 부모지만 그들은 처벌받아 아즈카반에 수감되었으니, 그들에게 분노하고 복수하고자 하는 이들의 칼날이 제게 향해오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핏줄을 이은 혈육에게 향하는 모진 시선과 비난을 저만큼 이해할 수 있는 드물테다. 물론, 그것이 제게 상처가 되었냐고 한다면, 글쎄. 그래도 그것들이 저의 말재간을 성장시켰다는 것 하나는 확실하다.
범죄자의 자식은 또다른 범법자의 자식의 처지를 이해할 수 있다.
"기분이 많이 나빴나요? 그러면 사과할게요. 순혈은 존중받아야하니까."
"저는 당신을 그리 싫어하지 않는답니다."
나긋한 대꾸다. 꼴이 마땅찮아 심술을 부렸을지언정 저는 순혈의 고결함을 이해하는 이고 모든 순혈은 존중받아 마땅하다. 스웰링에게 저는 악의가 없고 부린 것은 그저 한낱 심술에 불과하며, 제가 이유는 다른 것이다. 하지만 대꾸를 하고나면 떠오르는 생각이 있다. 혹시 제 말이 꼬리를 마는 것처럼 보였을까. 지는 것도 싫고 오해하게 두는 것도 싫다. 저는 언제나 포장을 했을지언정 솔직하지 않은 적이 없고 그리 살았기 때문에 일말도 오해의 여지를 주고 싶지 않다. 그러니 말을 덧붙인다.
"스웰링의 거짓말은 싫지만 그들의 예언은 싫지 않았으니까요."
저는 애초에 스웰링을 싫어하지 않는다.
"스스로를 예언자라 사람들을 속였지만, 그것이 실제 예언이 될 수 있도록 노력했죠.
그러니 저는 그들이 마지막 예언으로 어둠의 마왕의 승리를 말했다는 것이 기쁘답니다.
마왕의 승리를 위해 노력했다는 것 아니겠어요?"
예언이라 거짓말을 한 것은 용납하기 어려우나 최소한, 마지막까지 제 부모와 같은 선상에서 어둠의 마왕이 승리하기를 바라고 노력했다는 자들임을 알고 있으므로. 그들은 거짓말쟁이들일지언정 배신자들이 아니다.
"그러니 당신을 순혈의 가치대로 존중할거예요.
그 이유는 제가 멜리사 언더힐이기 때문이며,
어둠의 마왕을 위해 마지막까지 맹목하다 복수의 칼을 든 자식이라서랍니다.
저는 저의 부모를 부끄러워하지 않거든요."
그리고 그들을 싫어하지 않게 된 것은, 저는 제 부모의 뜻에 따르는 이이기 때문이다.
제 부모는 순혈의 고결함을 잊고 위선으로 모든 걸 어그러트리는 세계에 발악한 이들이다. 땅으로 추락하는 순혈의 긍지를 마지막까지 기억하고 지킨 이들이며, 거짓으로 신념을 말하지 않았고 그를 위해 제 모든 것을 내던질 줄 알던 이들이기 때문이다. 어리석은 자들Mug-gle속에 자리한 진정 지혜로운 자들Wiz-ard이기도 했다. 고결한 이념을 잊는 시대에 스스로를 던져 다시금 순혈의 이념을 각인시켰고, 그렇기에 이 끔찍한 시대에 불가피하게 희생될 수 밖에 없던 제물이다.
그리고 저는 그들의 자식이며, 그들의 뜻을 잇는 자라서,
"그럼 넌, 부모님을 좋아해? ... ... 사랑해?"
"보고싶다고 생각한 적, 있어?"
질문에 답을 할 수가 없다.
그 말은 사실 말이 아니라 하나의 주문이라서 저의 혀를 굳게 해버린 것은 아닐까 생각이 든다. 부끄러워하지 않는단 말에 사랑하냐는 질문은 예상 외다. 부모를 모욕하기 위해 저를 찾았다, 되려 어린 아이의 날선 말에 질려 저 자체를 혐오하게 된 이들조차도 묻지 않은 말이다.
그들은 보통 제 부모를 빼닮았다 했다. 혹은 부모보다도 더 독한 년이라 말한다. 저는 환하게 웃으며 감사하다 답했다. 저는 부모를 쏙 빼닮을 것이라고, 보고 자란 것이 있으니 그와 같지 않겠냐고, 그리고 사람은 배움의 동물이라 그보다 더 뛰어날 것이라고 웃었다. 그러면 대개 질린 얼굴로 뒤돌아버린다. 또는 순수를 가장한 악의로 어린 또래가 묻기도 했다. 범죄자 부모가 부끄럽지 않냐고. 그러면 저는 부끄러울 일이 무엇이 있냐 오히려 자랑했다. 세계가 그릇되었으니 이 세상에서 올바르게 살아가는 이가 더 부끄러운 법이라 답했다. 제 말도 이해 못하는 얼간이는 얼빠진 얼굴만 했다.
그러니, 그 말은 저로써도 처음 듣는 질문이다. 어린 저를 이어 맡은 보호자조차도 묻지 않았다. 그저 그들은 훈계하고 교육했을 뿐이다. 부모를 부끄러워하지 말라고, 그들은 고결했고 그들의 행적은 이러한 이유였다고, 마지막까지 순혈로 산 진정 고결한 이들이라고. 안타까운 투사고 불가피한 희생이었다고. 그러니,
"저는."
사랑하냐는 질문은 처음이고, 스스로도 내리지 못한 답을 알기 위해서는 부모님을 떠올릴 수 밖에 없다.
슬픔과 절망에 가여운 울부짖음이 집안 공기를 찢어내고, 집요정들에게 화풀이하는 매서운 손찌검이 울렸다. 그들은 언제나 저를 가여운 딸이라 했다. 마지막 순간 저를 안아주며 끝내 복수를 위해 떠나는 등이 있다.
그 모든 것들을 다시 되새기며 저는 생각한다. 저는 사랑하나? 좋아하나? 남은 편린처럼 기억하는 그들의 모습은 그것이 전부라, 그에 대해 어떠한 감상을 가져야하는지 알 수가 없다. 그들에 대한 이해를 갖는 것은 행적을 알고 깨달으면 그만이나, 사랑을 느끼기 위해선 그들에게서 얻은 저의 감정을 살펴야했다. 그렇게 결정지으면, 그들에 대해 무엇하나 확실하게 말을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사랑하나? 좋아하나? 사랑하지 않나? 싫어하나? 스스로의 감정도 제대로 이해하기가 어려워서, 어떤 말이던 뱉는 순간 거짓말이 될 것 같다. 좋다는 말도, 싫다는 말도, 사랑한단 말도, 사랑하지 않는단 말도. 저는 거짓말을 하고 싶지 않다. 그에,
"저는 부모님을 존경해요."
제가 확실히 답할 수 있는 감정을 꺼냈다.
"순혈의 고결함을 알고 마지막까지 그를 위해 노력한 분들이셨으니까요.
스스로의 신념을 가벼이 저버리지 않는 분들이기도 하셨죠.
그렇기에 스웰링도 싫은게 아니랍니다.
스스로 한 말에 대해선 지키려 노력한 사람들 아니겠어요?"
배신자들은 저 좋을대로의 말을 뱉으며 돼지, 짐승과 같이 배부르고 살아가는데에만 급급해 순혈의 긍지를 잊는다. 그런 끔찍한 자들을 알아 저는 제 부모를 존경한다. 싫고, 좋고의 감정으로 놓고 본다면 좋다 쪽에 가까울테다.
그런데 기묘하게도 좋다고 말을 할 수가 없다. 거짓을 말하는 것 같아서.
그래서 보고 싶냐는 말에도 차마 대답하지 못한 채,
"그러니 당신의 존중을 기꺼이 받겠어요."
나도 널 존중할게. 넌 스웰링의 거짓말이 싫고, 난 닐라 스웰링이니까. 그러니까, 너에게 거짓말하지 않을게. 이런 것도 존중일까? 듣기 좋은 상냥한 말에 대한 답으로 주제를 돌렸다.
(*너무 늦어서 죄송합니다... ... 우리 친구 사랑해요.... 러브.. 감사합니다... ... 멋진 대화라 두근두근해요. 오타비문은 마음의 눈으로 봐주세요...... 멘답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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