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세상에게
2022. 10. 31. 02:29
2022. 10. 31. 02:29
나를 이야기할 때에,
너를 말하지 않을 수가 없어.
단 향이 깨어진 잠의 자리에 채워든다.
이는 설탕의 단 맛을 닮았다. 달큰하며 무겁고, 무게감이 살내음같은 포근함을 만들기도 하는, 그런 단 향. 그 향이 좋아 고개를 움직여 쫓는다. 이 속에서 꿈지럭거리는 몸짓이 만들어지고, 몸을 감싼 이불은 사부작 작게 소리를 냈으며 품안에 존재하는 온기가 가슴팍을 일정하게 덥혔다. 깨어진 잠으로 되찾는 감각은 감긴 눈꺼풀 위로 덮여오는 햇살을 알아차린다. 단 향을 찾아 움직였는데 그 속에서 깨닫게 되는 것들이 있다.
포근한 이불, 햇살, 품안의 온기, 색색이는 숨소리, 가슴팍을 일정하게 덥혀오는 숨결. 찾아내는 것은 세상의 단편들이고 이것이 더해질 때마다 폐부를 파고드는 향은 더 짙어진다. 더 달게, 더 포근하게, 더 따듯하게, 더 애틋하게. 그리하여 마침내, 쫓은 고개로 더없이 깊어진 단 향이 코끝에 닿고, 향을 빚어내는 하얗고 간지러운 감촉에 입술이 부딪히면,
"루크."
모든 아침을 이뤄준, 그리하여 세상이 된 이를 불러서.
눈꺼풀은 입술에 부스스한 머리카락이 닿을 적부터 절로 들어올려진다. 그리하여 담기는
하얗고,
하얗고,
하얀, 저의 빛.
이것이 저를 이루는 세상의 색이다.
덜어진 잠만큼 눈꺼풀은 무게를 잃고 쉬이 떠지는데, 심장은 들어찬 단 향의 무게를 고스란히 삼킨 양 무겁게 울린다. 두근, 두근, 두근, 두근, 두근. 일정한 울림을 듣다보면 문득 드는 사소한 생각이 있다.
심장 속에 살고 있는 작은 토끼. 저의 심장을 매순간 간지럽게 만드는 것. 입술에 닿은 감촉에 살결도, 심장도 모두 간지러워서 입꼬리의 호선은 완만해질 줄을 몰랐다.
"작은 토끼는 잠이 없나 봐, 루크.
내 큰 토끼는 계속 자고 있는데."
조용히 속삭인 말은 혼잣말처럼 상대의 귀에 제대로 닿지 못한 채 흐려진다. 그저 귀에 닿는 속삭임이 간지러웠는지, 응, 작은 잠투정과 함께 품으로 파고드는 온기만 더 확연해진다. 제 가슴팍에 닿는 숨결이 더 뜨끈해졌다는 것이 차이다. 한없이 잠에 약한 투정이, 그 속에서 품으로 파고들어오는 어리광이 좋아서 단잠을 깨우며 재촉하던 어린아이는 잠을 구경하는 즐거움을 아는 어른으로 자란다. 색색거리는 숨소리의 사랑스러움을 아는 연인이 되고, 그를 지키고 보호해주고 싶단 욕심을 가지는 한 사내가 되어서.
"있잖아, 루크."
웃음이 번져든다. 눈앞에 보이는 하얀빛이 너무도 눈이 부셔서, 달아서, 애틋해서, 좋아서. 고개를 묻고 보드라운 머리카락 사이를 유영하듯 가벼이 흔들었다. 그리고 그렇게,
“루크가 잘 때에만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있어.”
제 사랑을 이야기했다.
루크 윈스턴,
키아라,
레드.
제 세상은 가진 이름이 많다.
그리고 가진 이름만큼 제게 가져간 의미도 다양하다. 그는 제게 아주 많은 것을 독식한 사람이다. 애정 하나만 갖고 살아가고 싶어한 겁쟁이, 그런 저임에도 아주 많은 걸 가져가버려서, 그를 이야기할 때엔 하나의 단어로만 정의해 표현할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나뉘어진 이름들을 이야기할 때엔 아주 사소한 처음부터 이야기가 시작되고 만다.
제 세상은 첫 만남서부터 제게 의미를 가졌다.
“내 베개 안 보고 싶은 사람!”
친구들에 대한 개구진 질문으로 가득 쓰인 시험지가 있었다. 각 친구들마다 문제가 늘어져있고, 노엘은 베개 안에 이것을 넣고 다닌다고 한다. 이것은 무엇일까. 제 문제도 재미있기에 베개를 번쩍 들어 친구들을 불렀다. 어떤 말장난으로 헷갈리게 해볼까, 장난을 쳐볼까. 그런 기대를 가지고 꺼낸 말인데 수많은 답 속 들려온 하나가, 지금도 잊혀지지 않고 남는다.
“혹시 폭탄이라던가...”
들리는 답변은 퍽 개구져서, 어라. 한껏 기대와 함께 개구진 질문을 한 이를 바라보게 된다. 부스스한 하얀 머리카락, 하얀 피부, 온통 하얗기만 한 친구의 눈이 까맣게 반짝이는 게 퍽 인상적이었다. 온통 하얗던 것은 그 눈을 강조하기 위함이었나 싶어지기도 했고 보드랍고 작은 솜뭉치, 어린 털짐승을 닮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어느 쪽이든 짓궂은 답변과 어울려보이는 모습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가 가진 시험지의 문제처럼.
“혁명의 붉은색을 좋아할 것 같은 추측인걸?”
키아라가 좋아하지 않는 색을 모두 고르시오. 무난한 문제 아래 쓰여있는 선택지는 누가봐도 한껏 장난을 담아 써놓은 예시였기에 마음에 들었다. 혁명의 붉은색. 그에 부러 엉뚱하게 말을 건네면,
“그 베개 붉은색이 되는 거, 좀 멋있을 것 같지 않아?”
조금도 지지 않고 엉뚱하게 맞춰주는 답변에, 어느 순간 어린 꼬마 둘은 혁명가가 되었다.
그렇게 베개를 꾸미겠다며 손을 잡고 베개에 비즈를 달러 갔던 기억이 선명하다. 그를 꽤 좋아해 헤지도록 끌고 다녔고, 비즈를 잃어버렸고, 잃어버린 것을 다시 그가 들고 와 수선해주었다. 보물찾기처럼 잃은 비즈를 찾아다니다가 그러는 중에도 또 잃어버린 비즈를 생각하면, 바보같았으며 즐거웠고, 재미있었으며 그 기억이 절 간지럽혔다. 소소한 장난 속에 하얀빛으로 지어지는 웃음이 좋다 생각했다. 밝고, 맑고, 즐거움이 솔직히 드러나서.
좋으니 계속 보게 되고
계속 보다보면 역시 알게 되는 것들이 있는 법이다.
“짠, 선물!”
그는 선물 주는 것을 좋아한다. 받는 이의 특징이 고스란히 담겨진 선물을 보면 주변 사람들을 세심히 보는 시선을 알 수 밖에 없다. 그걸 보며 확신했다. 친구들을 좋아하니 같이 지내면 즐겁겠다. 그 성정이 좋고 타인을 보고 만드는 선물들이 마음에 들었으니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손을, 무언가를 만들고자 빛내는 눈을, 만들기 위해 머릿속에 또다른 공방을 차려 고심하는 얼굴을 보게될 수 밖에 없다. 그렇게 보다보면 어느덧 새로운 궁금증이 또 올라와서,
주변에 애정을 가지고 세상을 보는 이가 만드는 작품은 어떨까.
그가 보는 세상은 어떻게 작품에 담겨들까.
어느 순간 궁금해져서, 이젠 선물이 아닌 작품을 만드는 과정까지 보여달라는 말과 함께 그를 쫓았다.
그는 저의 친애다.
“레드!”
“응, 옐로.”
어린 장난으로 시작된 비밀스러운 혁명은 흐려지지도 못한 채 이어져 애칭이 된다. 혁명이니 레드다, 하고 붙인 애칭에 그럼 같이 색으로 애칭을 주겠다는 말과이 들리고, 그렇게 노엘의 세례명을 말장난 해 만든 옐로란 애칭이 제게 쥐어진다.
서로의 색에 맞지도 않아 비밀 암호마냥 지어진 애칭은 아이러니하게도 의미깊은 색상이 되어버린다. 혁명을 증명하는 팬던트 색상이 되고, 팬던트에 엮은 서로의 탄생화 색을 쏙 빼닮아서. 좋아한 적 없는 도서관에 담요와 베개를 두고 간식 바구니까지 놓고 살게 된 건 둘이서 큰 의미도 없이 갖고 있는 혁명이란 이름이 좋아서였다. 그렇게 무엇도 하지 않은 채 이름만 존재하는 혁명은 오랫동안 이어졌고,
서로의 탄생화, 태어난 이들을 축복한다는 꽃이 비밀을 담은 붉은 보석을 엮어내는 중에,
“레드.”
상대의 눈도 그와 같이도 붉어졌다.
“어쩌다보니, 눈색도 붉어져버렸네.”
멋쩍게 눈가를 만지는 손 끝에 시선이 닿는다. 그리고, 그를 본 순간의 기분은.
온전히 눈을 바라보기 어렵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붉은빛 대신 손끝에 시선을 뒀다. 그 눈이 붉어진 것은 레드라는 애칭을 지어준 제 탓인가 싶기도 했고, 그에게서 박탈된 신의 사랑과 타락의 증표가 너무도 붉어 부르는 애칭을 여전히 입에 담아도 되는지 고민되기도 했다. 타락을 자각시키고 싶지 않아서 하나 둘 지어준 애칭인데 그에게는 이것이 제 배려가 될 수 있는 것인가 싶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오르는 감정은 비단 그것으로만 표현될 수가 없어서.
신의 사랑을 박탈당하고 세례명조차 스스로 거부하게 되는 이들을 볼 때 빚어지는 감정은 쓰리다. 선연토록 쓰린데 그가 제게 주는 감정은 더 짙었다. 가엾이도 죽은 친구들을 보았을 때보다 더 짙은 안타까움이 남는다. 그건 그의 죽음을 모조리 보았기 때문이기도 했고,
“나는... ... 레드를 이해해.”
비겁한 위선자, 애정만 담는 겁쟁이와 다른 최선을 보았기 때문이기도 했다.
신탁은 절대적이나 그를 이루고 싶지 않다. 대신할 것을 바쳐보겠다 어린 생각으로 굴었던 노력이 있으나 이는 부질없는 것이 된다. 제물이 신의 곁에서 행복하길 바라면서도 타락해 돌아오길 바라는 저는 무엇보다 모순되었을텐데, 아이러니하게도 모순된 건 저 뿐만이 아니다. 신이 종용했으니 살인은 죄악이 아니 된 것만큼 기괴한 것이 없다.
살인자가 된 친구들은 원망할 수 없고, 죽음에 가진 슬픔은 타락할 지언정 살아돌아오는 이들을 알아 부질없게 됐으니 품는 감정도 우스운 꼴 밖에 되지 않는다. 모순 속에 저는 사라지고 흐려져서, 모순적인 세상에 저는 적응할 수가 없어서 차라리 외면하고 제 애정만 말하기로 했다. 그게 제가 내린 결론이고 결심이다. 그렇게 비겁자가 되고, 겁쟁이가 되고, 그러면서도 이게 최선이라 자위 했는데,
앞의 이는 죽은 친구들이 신의 곁으로 온전히 가길 바라 도전자를 숨겨낸다. 도전자 대신 무작위로 죽을 한 사람이 아니었더라면 그의 의도는 성공했을 테다. 설령 뒤로는 시체를 작품으로 만들고 싶다는 욕망을 가졌다고 해도, 적어도 외면 속에서 신탁과 시련에 대해 그 어떤 말도 얹지 않은 채 애정만 이야기하는 저보다 훨씬 나은 사람이라 생각해서,
겁쟁이와 달리 노력한 최선이 좋았고, 그 결과가 뜻대로 나오지 못했음이 안타까웠고, 끝내 스스로의 목숨까지도 제물도, 도전자도 아니게 된 채로 내놓게 되어버린 이가 슬펐다.
그러면서도 제가 미처 보지 못한 길을 보여주는 빛이 환해서, 그대로 따라 향하고 싶단 생각을 했다.
“레드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려했다 생각하고 있어.
나는 네가 돌아와서 기뻐, 레드.”
그는 저의 이기적인 동경이다.
혁명이라는 단어 하나로 묶여 시작되던 관계는 순탄하게 나아간다. 장장 10여 년 간 이어진 관계는 익숙하고 당연하게 자리한다. 친애로 이어져 이기적인 동경으로 관계에 대한 애정을 낳고, 계속 지속되길 바라는 소망을 빚었다. 그러니 먼 훗날의 이가 와서 해주는 대화가 그저 기뻤다.
“미래 이야기는 안 하는게 좋겠지만,
혁명... ...은 계속 진행되고 있으니까.”
매점의 디저트는 먼 시간선 뒤의 사람을 불러온다. 그가 직접 이야기해주는 확고한 미래가 기뻤고, 만족스러웠고, 더 욕심이 난다. 10년, 30년, 쭉. 그렇게 말하는 제게 약속이라며 새끼 손가락을 걸어주던 이를 문득 떠올려보면,
루크, 혁명 뒤의 침묵은 이런 의미였어?
문득 품에서 곤히 잠든 이가 다시금 달게만 느껴져서, 들리지도 못할 말을 작게 속삭였다.
먼 훗날의 이는 귀여운 인형을 잔뜩 만들어주고 간다. 오르는 기쁨은 과도한 열기를 빚고, 열이 오르도록 좋아한 저는 이를 삭히며 기쁨을 내려앉힌다. 나란히 만들어진 인형을 함께 안고서, 어딘가 고장난 것 같은 생각을 하며 나란히 만들어진 인형을 보면.
그 순간 보이는 인형들이 너무도 좋은 것은 그저, 친구에게서 의미있는 선물을 받았기 때문만은 아닐테다.
훗날이 약속된 관계는 과거에 묻어야할 가족에 대한 그리움까지 삼켜준다. 모두가 함께, 서로 해치지 않고 사랑하고 즐겁기를 바라는데 신탁이 존재하는 이곳은 누가 도전자가 될 지 모르고 누가 살해되어 시신으로 발견될지 알 수가 없는 곳이다. 그에 애정만을 입에 담으면서도, 제가 주는 애정에 대해 오롯한 기쁨과 행복이 오지 않을 것임을 의심하고 체념하게 되는데 그는 온전히 저의 애정을 말해도 되는 이가 된다. 거기서부터 오는 차이가 저를 안도하게 한다. 온 진심을 다하게 했다.
가족을 그리워한 것은 온전히 사랑해도 되는 존재를 그리워했었던 것임을, 저는 그로써 깨닫는다.
애정 외에 지우고 외면해, 종내엔 스스로도 알 수 없게된 수많은 감정의 이름을 하나씩 찾았다.
그는 저의 위안이다.
그리하여 시간이 흐르고, 마침내 모든 것이 밝혀져 신탁조차도 삶을 기만한 거짓임이 드러난다. 그간의 괴로움은 분명 존재하는데 본래라면 있어선 안될 고통임을 깨달았다. 그 사실이 벅차단 생각이 들어 모든 것을 등돌린 채 자고 싶다 생각했다. 그렇게 영영, 어쩌면 끝나지 않을 잠을 자도 좋겠다고.
그럼에도 눈을 감는 대신 주변을 살피면, 제 삶에 가장 바란 것들만을 남은 현실이 저를 반겼다.
떠나지 말고 모두가 함께 있기를 바란 비겁한 애정의 바람을 이뤄주듯, 떠나는 이가 있을지언정 남는 이들이 더 많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된다. 기쁘게도 남아주겠다는 선택을 한 이들이 있으니 그 곁을 지키려 남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다. 외로이 두고 싶지 않아서, 다정한 선택을 해준 이들이 좋아서, 제 삶을 다 걸어 그들을 사랑하고 싶어서.
그러니 곁에 덩달아 남는다 이야기를 하고 나면 제가 서 있는 곳은 한결같은 그곳이다. 오랜 시간동안 친구들과 함께 자라온 장소. 익숙한, 그러나 더 이상 끔찍하지 못할 학원에 덩그러니 서 앞으로 무엇을 해볼까, 그를 생각했다.
먼 훗날, 남은 이들조차도 모두 스러져 죽는 정말 먼 훗날, 긴 수명의 끝을 맞이한 후 영원을 살아가는 재앙 된 친구들이 나갈 날이 올지 모르겠다 생각은 하면서도, 당장의 그 순간이 무서워 멈춰있고 싶지 않아 더 많은 애정을 줘야지. 그리 각오한 채로. 차라리 이 애정을 어떻게 표현해볼지를 고민했다. 그때에
계속 같이 있자. 기쁜 선택을 해준 저의 안식이 다가왔고
마지막까지 그러할게. 저는 끝이 있는 약속을 했다.
“어떡하지? 나에게는 마지막이 없어서 영원히인데.”
그리고 그 때에 들리는 상대의 답이.
제게 바라는 답이 무엇임을 알 수가 없다. 죽어 눈이 붉어진 이는 재앙으로 영원히 살아가는데 저는 죽어 돌아온 자가 아니라 언젠가 이 삶의 끝을 맞이할 것이라서. 이는 노력으로 될 것이 아님을 모를 이가 아니라 저는 되물었다.
“어떻게 할거야? 내가 영원히를 못 산다면.”
그리고 이어 들린 말은,
“기다려도 될까? 네가 다시 돌아오는 날을.
너무... ... 욕심이려나?”
이 말을 들을 적의 기분은, 지금도 설명하기가 어렵다.
저는 제 삶에 이루고 싶었던 것이 애정만이라서, 가졌던 수많은 감정에 대해 제대로 이름을 붙여 이야기 하지 않는다. 친구들의 죽음에 대한 슬픔도 슬픔이라 표현하는 것이 우습고, 친구를 죽인 친구들에 대해 불쑥 튀어나오는 원망은 가져선 안될 것이니 삭히고 어그러트려야함이 옳다. 가엾게도 죄를 지으라 내몰려진 이들에게 가져야할 것은 안타까움이 최선이나 저는 방관자이니 그조차도 이기적인 기만에 가깝다. 그러니 자격없이 품을 수 있는 것은 애정이고, 애정 뿐이라서. 그리고 그것이 제가 가장 바란 것이기도 했어서 저는 애정만을 이야기했다.
그러니 저의 모든 감정을 삼키고 품은 애정의 대상들은 당연히 주위의 친구들이고, 그들에게 품은 애정은 너무도 커져 하나의 집착처럼 변모한다. 같이 있자. 곁에 있어 줘. 친구란 소유할 수 없으니 그를 닮은 인형들을 갖고 마지막까지 함께 있어줄 것을 이야기했다.
그리고 말했듯 친구란 제가 소유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언젠가의 헤어짐을 저는 이미 알고 있다. 쥐인형은 저의 변모하는 애정의 한 형태기도 했지만 떠나간 이들을 그리워할 수 있는 사진과도 같은 것이라 이별은 언제나 제가 각오하고 받아들여야할 것이다. 속이 쓰려도 이는 당연한 것이니 저는 그를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는 죽어 다시 태어날 저에 대해서도 생각해 이야기를 한다.
가장 욕심쟁이에게 이야기해주는, 그 욕심많은 말에.
“돌아올게. 이곳으로, 영원히!”
저의 답은 정해져있고,
“그럼 약속이야.
안 찾아오면 내가 찾으러 나가버릴지도 모르니까,
지치기 전에 와 줘.”
그리하여 그는 저의, 욕심이자 미래이며, 영원이 됐다.
저의 미래와 먼 훗날의 삶까지, 몇 번이고 이어질지 모르는 새로운 삶까지 모두 약속했으니 그에 맞춰 사고한다.제 평생에 가장 중요하게 자리잡은 이는 오랜 시간 둘만의 비밀이고 여전하 이름이 남은 혁명을 함께해줄 이고, 그는 이제 저의 영원을 함께 지내주기로 했으니 가장 우선해야할 이가 된다. 그러니 그 약속과 함께에 제 삶에 포기하는 것들이 생겨난다.
저의 친구들에 대한 애정이 가족에 대한 그리움까지 잡아먹었듯이,
영원을 함께해줄 고마운 이를 위해 내어주는 것은 앞으로 있을 저의 인연들이다.
내거는 약속은 분명 빠르게 나왔으나 그렇다해서 허투루 꺼냈다 이야기할 수는 없는 것이다.
상대보다 더 소중한 이는 생길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 죽어 다시 태어나 이후에 가지는 가족들도 상대보다 더 값지지는 못할 것이고, 공평하게 사랑한 친구들 중 가장 사랑하는 친구가 생겨난다. 그보다 더 애정을 가질 존재가 생겨선 안되니 제 삶에 생각해본 적 없던 애인이란 관계도 쉬이 단념했다. 굳이 그러한 형태의 관계가 존재치 않는다해도, 제 영원을 함께해 줄 이가 있으니 단념은 아쉽지도 않게 완성된다.
기쁜 약속에 맞춰 저도 내려놓는 것이 있는 것 뿐이다. 다시 그 옛날로 돌아가지 못할 그리운 가족들, 옛 친구들, 훗날 죽어 다시 태어나거든 만나게 될 새로운 인연들, 그때의 새로운 가족들, 우정이 아닌 사랑의 형태의 관계들도, 모두.
물론,
혹시라도 아주 사소하게,
그 관계의 형태들에 대해 궁금증이 생긴다면,
“레드,
정말 키스하면 저릿저릿한 기분이 들까?”
차라리 상대에게 그를 묻게 된다.
도서관에 익숙하게 자리하고, 언젠가의 팬던트를 만들던 때처럼 담요와 베개를 놓고 간식 바구니까지 둔 채 책을 읽다보면 올라오는 궁금증은 사소하다. 사람이 사람에게 가지는 애정의 형태와, 그리고 그것의 크기가 서로 같아서 이뤄지는 사랑을 보면 그 순간들이 멋지고 예쁘다 생각하는데 진정 좋아하는 이와 연인으로써 이루는 스킨쉽을 볼 때마다 그것이 진정 달짝한 것이 될 수 있는지는 이해할 수가 없다.
아무리 좋아하는 사람이랑 하는 거라지만,
스킨쉽 자체가 저릿한 기분을 만들 수 있는건가?
물론 친구를 끌어안고, 그에 얼굴을 묻고 부빌 때에 오는 안정감과 즐거움은 알지만 저릿한 감각은 저로썬 예상할 수 없는 것이라. 그런 사소한 궁금증이 불쑥 나오고, 글쎄. 상대는 모르겠다는 답을 내어준다. 그리고 그를 듣고나면 툭 튀어나오고 마는 건,
“있잖아.
우리 한 번 해볼래?”
이때 정말 궁금했기만 했는지 나도 잘 모르겠어.
이제야 할 수 있는 이야기를 잠든 이에게 비밀처럼 속삭였다.
아마도 아닌 것 같아.
나랑 해도 괜찮아? 오히려 상대는 기겁해 묻고
루크라서 괜찮은건데? 그외의 모든 인연을 단념한 저는 당연하게 답을 했다.
사소한 호기심으로 시작된 것은 상대의 허락에 맞춰 이뤄진다. 긴장해 눈을 감는 이를 보면서 묘한 기분이 들어 머뭇거리게 되다가도, 그럼에도 제 호기심은 남았고 제가 이를 할 기회는 지금 뿐이라는 생각이 들면 고개는 그대로 앞으로 숙여져 톡, 가볍게 입술끼리 맞닿았다 떨어진다. 그저 스쳐 닿듯이 맞추고나면 입맞춤은 기대보다 더 별 것 없고, 끌어안고 부비는 스킨쉽보다 오히려 못한 기분이라 의문 속에 한 번더 입술을 꾸욱 내리눌러봤다. 그럼에도 무엇이 특별한지 알 수가 없단 생각에 고개를 떼려하면,
쪽. 채 떨어지기도 전에 상대의 입술이 벌어져 제 입술을 입술끼리 부비듯 핥아낸다.
그때 등허리서부터 타고 올라온, 감각들은.
“저릿해? 나는 긴장해서 잘 모르겠어.”
숨이 막히도록 조여오는 전율에 호기심은 이미 풀려들었는데, 제게 그를 알려준 이는 모르겠다 하는 말에 불쑥 올라오는 생각은 스스로 무어라 정의할 수가 없다. 이를 알려주고 싶기도 하고, 또 한편으론 저 혼자만 이를 느꼈음이 싫기도 했으며,
“그럼, 또 할래?”
그리고 또, 다시 이를 느껴보고도 싶었다.
그래서 어느 순간 갈구하듯 몇 번이고 입술을 부비던 것은 저였고,
영원히 이어지는 날들동안 두 번은 없을 것이 너무 아쉬워서. 정신없이 입을 맞췄다.
그와 저는 변화되어선 안될 관계라 생각했다.
“있잖아, 하얀 꽃을 가지고 와서 갈색 흙 위에 심음 뭔지 알아?
우리 머리색이야! 같이 탄생화 옆에 두면 좋겠지.”
하얀 숲에서 본 광경이 아름다워서, 언젠가 그 꽃을 가지고 와 학원에 심어보자는 이야기를 했었다. 그대로 정신없이 잊었던 것을 넘치는 시간과 여유 속에, 다시 하나 둘 이뤄내기 위해 걸음을 향하던 중에 꺼낸 이야기는 사소했고,
“흰꽃은 흙이 없으면 금방 죽어버리니까, 옆에 꼭 붙어있어야겠다.
하얀꽃은 생각보다 욕심이 많아서, 한눈 팔면 시들거릴지 모르는데
흙 위에는 하얀 꽃 말고 다른 꽃들도 많이 피었잖아.”
사소했으나 그 속에 담긴 말은 결코 가볍지 못했다.
욕심을 이야기하는 말은 아이러니하게도 언제나 저를 기껍게 만들었다. 먼저 욕심내 말하는 관계가 아니라, 타인이 욕심내어주는 관계 아에 오는 기분은 스스로도 낯선 기쁨이다. 오로지 그만이 제게 채워줄 수 있는 기쁨이라서, 그 욕심에 대한 말을 고심하다 결국 속을 꺼내들었다.
“언젠가 꽃들이 모두 떠나고 흙만 남겨질 것을 알아.
나는, 다 떠나도 흰꽃만은 남았으면 좋겠어.
아주 긴 시간동안 이곳을 같이 살아가줄 사람을 정하라고 하면 레드인게 좋다는 거야.”
이처럼 아주 긴 시간을 이미 약속해버려서, 긴 시간 함께 지난 날들처럼 지내오겠다는 기쁜 약속이 있어서, 저는 이 관계가 변치 않고 영원토록 이어지기를 바랐다.
루크.
나는 이 완전한 관계가 변한다면,
언젠가 그 끝에 이별이 생길 것만 같았어.
함께 무언가를 만들고, 저의 수많은 이름을 가져간 이의 곁에서, 애정 외의 다른 감정을 조금씩 되찾고 되풀이 하면서.
“제이드 형아.”
그래서 불러줬던 호칭이 좋다가도,
“좋은데... ... 미묘해.”
문득 너무도 낯설어서, 좋은 것과 반응해야할 것을 알 수 없어 멈추게 된다. 이 관계가 좋으니까, 우리는 평생토록 이러한 관계로써 살아갈테니까. 서로 잘 맞는 친구로써 영원을 보낼테니까. 그리하여 결정된 영원일테니 이곳에서 변화는 바라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 형아, 불리는 호칭이 간지럽고 좋다 생각하면서도 관계를 변화시킬 것이란 생각에 불현듯 무섭기도 했는데.
“입 맞추는 것도 이렇게 기분 좋은데,
다른 것도 궁금하지 않아?”
그간의 두려움을 한 순간에 집어삼켜든 이가 하는 말에, 이것이 그간의 형태와 다름을 알면서도 홀린 듯 따라갔다.
사실은 말이야,
아주 오랫동안 참은 욕심이 터져나온 것에 가까워.
좋고, 기쁘고, 변화하는 형태가 기껍다가도 가지는 불안과 두려움에 외면하던 것인데,
먼저 맞춰버린 입술은 제 스스로 넘어서버린 선이고 웅크려 숨죽이던 욕심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모조리 잡아채버린다.
그렇게 도달한 방, 어린시절의 추억과 장난꾸러기들의 아지트로 자리하던 방에서, 그 옛날과 다른 형태로써 들어가 입을 맞추고나면,
서로의 몸을 더듬는 손길이 온전히 끝을 향해 나아가기 전에 저는 마침내,
“있잖아, 루크.
나는 루크랑 어떤 식으로든 같이 있을 수만 있다면 좋다 생각했어.”
영원토록 이어지길 바란 것은 서로가 가진 관계성이 아니라,
그저 상대가 곁에 있길 바랐던 것임을 깨달았다.
“그런데 이건 친구 말고, 다른 이름으로 하고 싶어.
애인으로 영원을 줘.”
그리하여 가장 크게 자리해, 너무 커 스스로도 모르게 숨겨버린 욕심을 이야기했다.
그리하여 욕심 끝에 제가 얻어낸 것은,
잠 대신 채워오는 단 향,
당연하게 입맞추게 되는 달짝함,
품으로 당겨 제가 소유하는 온기.
“루크”
품안에 자리한 상대를, 온기를, 단 향을 불렀다.
“욕심부려 다행이라 생각해.”
속삭이는 말은 제 욕심에 대한 말이기도 하고, 가진 욕심을 이야기해준 상대의 말에 대한 답이기도 하다. 애인하자, 애인으로 할래. 그렇게 끝나는 말에 기꺼이 수락의 말을 한 이는, 제 속과 똑같은 말을 꺼냈다.
함께하는 시간들이 소중해서,
욕심으로 모든 걸 잃게 될까 무서웠어.
결국 겁많은 욕심쟁이 둘이서, 그럼에도 온전히 숨기지 못한 채 서로에게 품어낸 욕심의 끝에 낸 결론이 마냥 달아,
“루크가 말하는대로 내 전부를 줄게. 영원을 줄게. 더 달라고 하면 더 줄게.
그러니까 더 욕심내 줘.
나에게,
루크의 욕심을 줘.”
처음 내어주고 내어받은 영원도 분명 한없이 저를 기쁘게 했었는데,
애인으로 받아낸 영원은 그와 비교조차 할 수가 없다.
“그렇게 다 루크에게 줄테니까, 계속 내 옆에서 받아가 줘.
그렇게 루크의 영원을 줘. ”
그러니 욕심은 그에서 멈춰야하는데 아니러니하게도 한 번 크기를 키운 것은 결코 줄어들 일 없이 제 부피만 키워서, 잠이 든 이의 하얀빛에 입을 댄 채 하염없이,
“그래서 매일 눈을 떴을 때에 내 세상이,
하앴으면 좋겠어.”
가장 큰 욕심을 입에 담았다.
'Character > Jade K. Winston'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아가씨 (0) | 2022.10.01 |
|---|---|
| 티르소스 (0) | 2022.09.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