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씨
2022. 10. 1. 00:29



소리를 삼키는 적막은 제 숨조차 가져간다.

몸에 무겁게 자리잡는 것은 속절없이 제 의식을 고꾸러트리던 잠과는 또다른 것이라, 바닥을 딛고 있음에도 저는 한없이 추락한다. 내려앉는다. 잠겨든다. 제 몸을 감싸는 것은 서늘한 공기건만 숨은 이다지도 부족해 손으로 목을 감쌌다. 숨길이 제 목구멍을 지나가는 것을 느낄 수도 없건만 여기로부터 손을 뗄 수가 없다.

또 다시, 시련이다.
그 사실이 숨이 막혔다.

 

“아가씨.”

 

뭉개지는 발음으로 부른 애칭이 속쓰리다. 일찍이 지었던 애칭은 다행이며 동시에 그렇기에 제 기분을 한층 더 역하게 만든다. 저의 애칭은 애정이고, 놀이였으며, 배려였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모순이기도 했다.

 

죽어 돌아온 이에게 타락의 사실을 실감하게 해주고 싶지 않아서, 저는 애칭을 지어주려 노력했다. 죽어 돌아왔을 때에 달라지는 호칭은, 쓸 수 없는 세례명은 타락한 자의 마음을 더 무겁게 짓누를 것이니까. 저는 제 소중한 사람들이 괴로워지는 걸 보고 싶지 않았다.


“살로메.”


그러니 이것은 이제 더 이상 부르지 못할 호칭.

 

“살로메.”

 

마지막으로 입에 담을 수 있는 세례명.


“살로메.”


소중한 이가 박탈당한 신의 사랑.

저의 애정과 배려는 모순이다. 그들이 살아 곁에 남길 바라고, 행복하길 바라고, 아프지 않길 바라는데 아이러니하게 친구들의 죽음을 염두한 애칭을 지어준다. 그리고 이것이 저의 최선이다. 신탁과 시련에 대한 저의 최선. 저의 부질없는 공물은 헛짓이었음이 이미 5년 전에 밝혀졌고, 그에 할 수 있는 것은 이에 순응하는 것 뿐이다. 순응하지 않는다한들 할 수 있는게 없으므로. 

한때엔 이 시련과 죽음이 끔찍히도 싫어

누구도 이를 이룰 수 없게, 다 재워버리고 싶기도 했는데,

 

그것이 결국 신이 바란 제물과 무엇이 다를까 싶어졌다.

 

움직이지 않고, 종일 잠만 자고, 사고도 할 수 없이 누워있는 친구들을 볼 자신도 없었다.

제단 위에 올려진 이의 시신조차 이렇게 끔찍하고 슬픈데,

제 손으로 만든 아주 긴 잠은 더 끔찍할 것이라서.

 

그러니 남는건 무엇 하나 할 수 없는 무지렁이 하나 뿐이다.


“... ...아가씨.”


이제 의미없을 세례명은 더 이상 입에 담지 않는다. 제 무력함을 인정하고나면 숨이라도 쉬어보기 위해 목을 감싸던 손마저 힘없이 떨궈진다. 시선조차 아래로 추락하고, 마침내 모든 것이 가라앉아지는 자리에 저는 홀로 서, 


“네가 돌아오면 좋겠어.”


이것은 신의 시련. 도전자가 시련에 성공한다면 신의 곁에서 사랑 받을 것이다. 그동안 누구도 성공하지 못한 것이긴하나 차라리 그의 행복을 빌어 말한다면, 저는 도전자가 성공하길 바라야할 것이다. 설령 누군가 그 대신 목숨을 내놓아야한다 하더라도. 제물 된 이가 받을 사랑과 영광을 위해서라면.

하지만 이미 말로 꺼낸 이기심으로 보였듯,

제가 바라는 것은 그게 아니다.


“나는 이미 너무 겁쟁이라, 친구들이 죽는게 무서워.
슬프고 괴로워. 불안해, 아가씨.”


겁쟁이. 언젠가 그가 했던 말 그대로 저는 너무도 겁이 많아서,


“이 죽음에 나도 익숙해질까 봐, 슬퍼지지 않을까 봐.

돌아오게 될 거라고 안일해질 것 같고,

그리고 정말 어느 순간엔, 친구들이 돌아오지 않게 될까 봐. ”


이기적인 배려로 지은 애칭은,
죽었어도 다시 곁에 돌아오길 바라는 마음이기도 해.


돌아오지 않는 죽음은... ... 너무 무서워.


결혼하지 마, 떠나지 마, 같이 있어. 언젠가의 고집처럼 입을 열어


“미안해, 그런데... ... 다시 돌아와 줘.”


결국 무엇도 하지 않는 방관자에서 안식마저 방해하는 자가 되어,


“... ...떠나지 마... ...”


떠나간 이에게 이기심을 소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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