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르소스
2022. 9. 10. 03:19
2022. 9. 10. 03:19
앞으로 남은 곰은 몇 마리?
몸이 지독히도 무겁다.
온몸이 물에 젖도록 놀았을 때조차 이처럼 무겁질 못했다. 졸려 쓰러져 잘 때의 눈꺼풀만큼 무거운 것이 없다 생각했는데 그것도 아니게 되었다. 처음으로 감당해보는 오롯한 슬픔의 무게는 터무니없어서, 이리저리 뛰다 온 것도 아니면서 입을 벌려 부족한 숨을 몇 번이고 폐부 깊숙이 채워냈다.
제가 서 있는 곳은 죽은 이의 방 앞이다.
잘자, 노엘.
문 꼭 잠그고 자라!
이 목소리가 마지막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들었던 목소리는 이제 꼬박 하루가 다 되어간다. 그리고 이제 이는 수없이 늘어날테다. 이틀로, 사흘로, 나흘로. 저는 숫자 하나만은 잘 세서 이것이 얼마나 끝도 없이 이어질지 알아차렸다.
문은 네가 잠갔어야했어. 기숙사 너머에서 무엇이 발견되었고, 어떻게 그가 죽었는지 알지도 못하지만, 그가 말했던 말의 의도를 고스란히 되돌렸다. 왜 너는 문을 잠그지 않았어? 당장 이 기숙사 문이 잠겼는지, 열렸는지도 모르지만 말은 변하지 않는다.
누군가 시련에 도전할 것이라 생각했다면,
계속 경계하고 제물이 되지 않도록 했어야지.
애꿎은 원망과 탓이 가선 안될 사람에게 향해든다. 그를 알아 베개를 끌어안고 못된 말들을 지워냈다. 베개는 그리운 이의 손길이 닿았었던 것인데도, 잡다한 것을 고스란히 품어내는 것과 달리 그 온기만은 부질없이 흘려보내버렸다. 마치 주인 잃은 방처럼. 그 삶이 끊겨버린 시신처럼.
그것이 못내 억울하고,
그것이 못내 소름끼쳤다.
돋는 소름에 베개는 오래 안겨있지도 못한 채 바닥으로 떨어진다. 시신을 닮은 것이 바닥에 누워있으니 그를 두고 갈 수가 없어진다. 그러니 떠나가지 못한 걸음은 뗄 수 없는 것이고, 낮아진 이와 시선을 맞추기 위해 몸은 허물어지듯 아래로 기우는 법이다. 아무렇게나 주저앉고 나면 베개 옆에서 몸을 말고, 열 생각 없는 문을 마주한 채,
“티르소스.”
이제 앞으로 몇 번이나 더 부를 수 있을까 싶은 이름을 불러서,
“노래 해줄까?”
노래와 춤을 구경하길 좋아한 이에게 작은 위안을 건네고자 했다.
"내가 노래하고 춤 출테니까 티르소스도 같이 추기야!"
앞에서 노래하고 춤춰달라, 하는 이의 손을 잡고 멋대로 추던 춤이 생생하다.
“곰 스무마리 학원에 있어!
티르곰 노엘곰 친구곰~ 티르곰은.. ... 뭐하지?”
“티르곰은 심심해~ 노엘곰도 심심해~
친구곰은 아무도안놀아줘!”
멋대로 개사한 동요는 제 입에서 어거지로 시작돼 상대의 입으로 멋지게 마무리가 된다. 엉? 어엉? 잉? 이상하게 소리를 내던 것과 달리 상대는 제 맘에 쏙 드는 노래를 만들어서, 싫다는 이를 붙잡고 구경말고 앞으로 저와 함께 춤추고 노래하자 이야기했다. 구경만하기에는 아쉬웠으니까.
어쩌면 그게 잘못이었나? 죽은 이는 클로이리샤 님처럼 춤과 노래를 보는 걸 좋아했다. 어쩌면 그래서일까. 같이 춤추고 노래하는 것을 볼 수 있도록, 가장 보기 좋은 자리로 데려갔나? 아니면 자기보다 더 멋지게 춤추고 노래할 수 있는 이라서 클로이리샤 님이 곁으로 데려간걸까? 아니,
“... ...미안.”
이건 알량하고 순진한 말로 지워낼 살인이 아니다. 자꾸만 빠져드는 못된 생각은 고개를 흔드는 것으로 털어냈다. 그러나 간사하게도 그 생각만으로도 제 슬픔의 무게가 덜어짐을 느꼈다. 그것이 더 싫어서, 미안해서.
“티르소스,
내가 노래해줄게.”
상념은 지우는게 좋다. 저 멀리 있는 이에게는 들리지도 않을 작은 속삭임이다. 그렇게 줄이라고 이야기할 때는 잦아들지 않던 목소리가 도통 커지지를 못했다. 그러나 중요한 건 크기가 아니라는 생각으로, 목소리를 가다듬고 부족한 숨을 위해 벌렸던 입을 움직였다.
서로 엉망으로 지어냈던 노래, 제가 시작했고 그가 마무리를 지었던 동요. 비록 마무리를 지어줄 이가 없으니 제대로 마무리 될 수 없을 것임을 알지만 그럼에도 시작했고,
“곰 스무마리... ... 학원에 있어.”
그리고 노래는 제가 지어낸 곳까지 갈 것도 없이, 첫 노래마디서부터 막혀버린다.
이는 제가 숫자를 너무 잘 세기 때문일테다.
결국 무엇하나 제대로 보여주지도 못한 채, 웅크린 몸은 제 무릎으로 얼굴을 숨겨버렸다.
곰 스무마리 학원에 있어!
티르곰 노엘곰 친구곰~
티르곰은 심심해
노엘곰도 심심해
친구곰은 아무도 안 놀아
으쓱으쓱 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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